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바스 왕조 (문단 편집) == [[이슬람 황금기]] 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이슬람 황금기)] [[파일:joseph-feely-z-houses-of-wisdom.jpg]] >'''학자의 피는 순교자의 피보다도 신성하다''' > >---- > ''- 아바스 왕조 시대의 격언'' 아바스 왕조의 통치기는 '''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문화적, 사회적 황금기'''였다. 이를 [[이슬람 황금기]]라고 부르는데, 보통 8세기 경 아바스 왕조의 [[하룬 알 라시드]]의 즉위로 시작되어 1258년 [[몽골 제국]]이 [[바그다드]]를 초토화시키기 직전까지 무려 500여 년 동안 지속됐다. 당시 무슬림들은 심지어 [[이단]]의 지식이라 할지라도 유용하고 실용적이다 싶으면 죄다 받아들여 기록으로 남겼다. 이슬람권은 그리스, 로마의 유산을 그대로 흡수했고 이는 훗날 [[르네상스]]의 바탕이 되어주기도 했다. 지금과는 달리 대단히 관용적인 사회였는데, 심지어 '''[[이신론]]을 주장해도 처벌받지 않았다.''' 바그다드에서는 [[그리스도교]] 학자들이 마음껏 활동했으며 [[아르키메데스]], [[플라톤]], [[소크라테스]], [[아리스토텔레스]] 등 고대의 이교도 학자들 역시 거리낌없이 받아들여졌다. 이슬람 황금기의 초기에는 [[동로마 제국]]이 [[유스티니아누스 역병]]의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으며 서유럽은 [[바이킹]]의 침략이나 잦은 전쟁으로 피로해진 상태였다. 문명세계의 또다른 축인 [[중국]]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. [[당나라]] 말기 ~ [[5대 10국]] 시기라 정복전쟁과 내전이 날마다 일어나며 나라가 피폐해지고 있었던 것. 그래서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 초기까지는 가히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지방이라 불릴 정도였다. 아바스 왕조의 수도 [[바그다드]]는 정말 '''세계의 수도'''였다. 바그다드는 당대 세계 최대 도시였을 뿐더러 전성기 시절 그 인구가 '''200만 명'''이 넘어갔고 온 누리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는 문화와 예술의 교차로였다. 아바스 칼리파 [[알 마문]]은 바그다드에 [[지혜의 집]]을 세워 고전들을 [[아랍어]]와 [[페르시아어]]로 번역하도록 시켰다. 지혜와 학문을 후원하는 건 고귀한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었으며 상류층들은 학문 연구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했기 때문.[* 지혜의 집에서는 수많은 고문서 번역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, 개중 한 프로젝트에 쓰인 예산만 해도 당시 영국의 왕립의학위원회 예산 2배가 넘어갔다. 게다가 '후나인 이븐 이스하크' 같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현대로 따지면 최상급 프로 운동선수에 비견된 만한 엄청난 연봉을 받았다.] 이러한 풍조에 힘입어 설립된 지혜의 집에서는 번역 업무만 한 게 아니라서 학문을 연구하고 기록으로 보존하기도 했다. [[연금술]]을 연구하며 중세 [[화학]]을 집대성했고 의학, 철학, 건축학, 생물학, 신학 등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, 페르시아 시대를 거치며 축적된 지식을 집대성한 학문의 장이라 봐도 무방했다. [[알코올]], [[알칼리]] 등의 화학 용어가 이시기 아랍권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아바스 왕조의 학문 수준을 짐작 가능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